inception review

2010.07.22 02:56 from 분류없음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모호한 공간감을 제공하는데 영화속 세계가 현실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모호한 위상을 거대한 서사의 도입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반론으로 시작하자면, 영화 속 공간은 무한반사된 이미지image들의 세계이다. 다만 이 영화의 경우 이미지들은 위계를 갖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순전히 이것은 영화관이라는 일방향적 건축-미디어 공간을 위한 하나의 위장일 뿐이다. 재현되는 이미지들은 그 어느 무엇도 스크린밖에 있는 사람에게 원본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세계는 반사되고 구부져지며 안과 밖, 시작과 끝,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스크린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성, 즉 체험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미디어라는 것은 체험을 제공하는 건축적실재로서 신체 이미지의 순간순간마다의 특정한 배치의 개괄, 즉 프로그래밍programming 한 것을 뜻한다. 현대예술은 장르간의 ‘권리적’ 위상 내에 존재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도 미디어복합체로서, 완전히 새로운 생성논리를 요구하는데 이것은 창작create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리믹스remix와 같은 재배치rearrangement의 역할이 더욱더 커진 현실이다. 

건축공간에서 건축가는 자신만의 공간 알고리즘을 창안하고 매 순간 신체이미지들의 중첩을 모델스터디를 통해서 탐구한다. 건축물이라는 미디어에서 신체 이미지는 매 순간 신체의 운동에 의해서 새롭게 배치되는데 모델 스터디가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배치를 시뮬레이션해주고 재배치의 잠재성을 계속 잉태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고정된 추상적 시점의 평면적인 작업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영화 또한 '하나의' 훌륭한 건축물로서 제작자들은 건축가architect와 같이 하나의 무의식적 세계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구축해 놓았다. 영화에서 연출자는 영화 속 공간 사이의 알고리즘을 창안하고 인물을 통해 공간을 넘나든다. 영화에서 공간적 전이를 이끄는 것은 일종의 서사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서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실제로 인물들은 주체성의 점을 형성하지 않고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의 성격이 더 짙다. 결국 이것도 이 영화의 모호한 위상의 한 축을 형성하는데 중첩된 그 어느 현실도, 영화속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세계도 영화를 보고나오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것만 같은 비현실성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마무리는 매우 의미깊은데 이것은 완결성으로서의 서사라는 동력과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비완결성 사이의 긴장감을 충분히 활용한 훌륭한 타협점을 제공한다. 

또한, 영화라는 미디어의 특성상 공간들은 몽타주montage에 의해서 순차적으로 접붙여질수밖에 없게 되는데 관계는 공간에 외부적이지 않고 인접하며 그것에 내재한다. 이는 건축물에서 순간이동할 수 없는 원리와 동일하다.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언제나 공간의 위계를 조감도적 시선으로 보지 않고 공간 내부에서 경험하며 그 속에서 탈출구를 찾게 된다. 탈출구는 이 세계 밖에 있지 않으며 항상 영화 속 시장골목이나 호텔복도 등에 인접해있다. 

다시 영화의 시작으로 넘어가서 영화는 서두에 영화 속 세계에 대한 도해diagram를 설명하기 보단 영상으로 그 공간의 모호한 위상을 현실화시킬 뿐이다. 관객은 다만 가볍게 주어진 인물의 대사라는 주석reference에 의해 머릿속 흰 종이에 닫혀진 공간들 간의 위계를 그리게 된다. 이럴 경우 조건이 상대적이라고 결과물 또한 상대적이라는 법은 없다. 공간을 넘나드는 알고리즘은 닫힌 세계간의 외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접한 분별없고 위계없는 이미지들의 세계라는 영상이미지의 중요한 원칙을 위해서 깨어진 형식으로서 존재이다. 이것은 또한 왜 21세기에도 우리가 평면적인 미디어인 영화를 보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절대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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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guerilla?

2010.04.03 14:39 from 분류없음

도시는 균질성을 결여한채 반복된다.

그것은 차라리 거대한 베드섹터이다.

어떠한것도 균질하게 쓰여지거나(Write) 읽어올수(Read) 없다.

데이터는 정전, 충격, 진동 혹은 바이러스, 충돌과 함께 끊임없이 피드백된다.

끊임없는 비균질성이 모든 것을 현재적으로 만든다

기억은 끊임없이 소급되어 재정렬된다.

역설적으로 현재가 과거를 가능하게 한다.


서사는, 일종의 스스로에게 연료를 주입하는 공중급유기이다. 

이것은 환영이나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나선으로 비행한다. 

그것의 경로가 경계이고 끊임없이 주의의 위상을 재정립시킨다.


위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은 없지만 '있는것처럼' 가장한다.

인터랙션은 없지만 '있는것처럼' 가장한다.

무가치하지만 '올바른것처럼' 가장한다.

교활하지만 '순수'를 가장한다.

기만을 '불능과 무력감'으로 가장한다.

이것이 거대한 도시적 규모의 말장난이다.

일단, 설득과 배려라는 기만적 인터랙션이 전제에 깔린다.

그것에는 거대한 규모와 상반되는 유연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끝으로 미디어를 활용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테제를 길러내야한다.

이것은 단순히 설득력을 위해서이다.

이 안에서 관계되는 서로는 서로를 도구삼아 멋대로 날뛴다.

모든 텍스트들은 기만에 순교하고 잊혀지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그런 패러독스들이 거리를 갤러리로만들고

일상을 미디어로 만들었다.


사물들의 표피 혹은 그것들을 감싸는 기호의 위상은 그 어느때보다 서브컬쳐라는 반동성의 아이콘으로, 혹은 상품의 껍질과도 같은 상징성으로 작용 한다. 시대적인 재료는 보다 좀 더 기만적인 재료이다. 

공업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구성방식은 처음의 의도에서 그 메시지가 상품화되는 과정까지 변형된다. 


거대한 컨텍스트를 현실로서 인정하고, 

잠입하고, 

공생하며 독자적인 역량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것, 

정체성을 상품적 상징성으로서 가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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